서울은 늘 '누군가의 게임판'처럼 느껴졌다.
어떤 수가 놓일지 예측할 수 없고,
다음 수는 언제나 더 강력하고 비싼 수였다.
나는 그저 ‘움직여지는 말’ 중 하나인 줄 알았다.
방어만 하면서, 주어진 룰에 따라 움직이며,
언제쯤 ‘내 차례’가 올까를 기다렸다.
언제부턴가 알게 됐다.
‘내 차례’는 누가 만들어주는 게 아니었다.
아파트 단지의 단톡방이
누구에게 열리고 누구에겐 침묵으로 닫히는지,
학부모 모임이 ‘암묵적 조건’으로 분류되는지도
내가 선택한 게 아니었다.
나는 그저 조용히 있었을 뿐인데,
이미 배제되어 있었다.
무언가를 잘못한 것도 아닌데
그 자리에 앉을 자격은 주어지지 않았다.
자산이든, 자녀 수든, 유치원 브랜드든
그들 사이엔 말하지 않아도 ‘자기들끼리 아는 룰’이 있었다.
나는 그 룰을 늦게 눈치챘고,
눈치챘을 땐 이미 ‘게임 밖’에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배제감이 내 시야를 넓혔다.
그들은 게임 안에서 움직이느라 바빴고,
나는 게임 밖에서 전체 판을 보기 시작했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게임처럼 보이지만 게임이 아닌 판’이고,
누군가가 설계해 놓은 구조였다.
누군가는 여기를 생존의 장으로 쓰고,
누군가는 여기를 자산 증식의 플랫폼으로 활용한다.
또 어떤 누군가는
서울을 감정 소비 실험지로 만들고 있었다.
나는 이제, 수를 둔다.
큰 수는 아니다.
하지만 아주 구체적이고, 나만의 방식이다.
블로그를 쓰고, 영상을 만들고,
누가 내 말에 반응하는지 기록한다.
누가 조용히 읽고 스쳐가고,
누가 질문을 남기고, 누가 또 고개를 끄덕이는지.
이건 자산 증식도, 교육 성공도 아니지만
서울이라는 판 위에서 내가 두는 수다.
누군가의 말을 따라 움직이는 말이 아니라
내 전략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실험장에서도, 나는 설계자가 될 수 있다
서울은 여전히 실험의 공간이다.
이 도시가 바뀌진 않았다.
계급, 자산, 정보, 모임, 분위기, 상징들까지
모든 것이 선별적이고, 모두가 대상이 된다.
그 안에서 나도 여전히 실험당하는 존재이지만
동시에 실험을 인지하고, 설계하고, 문장으로 기록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수이고,
서울에서 내가 살아남는 방식이다.
다음 수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엔 내가 움직인다.
서울이라는 판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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