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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문화생활

🎬 영화 《엘리오》의 그라이곤 군주, 왜 한국 엄마 같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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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의 신작 《엘리오(Elio)》를 보고 나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은 아이러니하게도 주인공 엘리오가 아닌, 외계 군주 ‘그라이곤’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라이곤 군주를 보는 내내, 한국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바로 영어유치원 상담 대기실, 사교육 박람회, 그리고 **“다 너 잘되라고 하는 거야”**라는 말이 울려 퍼지는 한국 가정의 풍경이다.

그라이곤은 외계 문명 ‘힐루르그’의 군주로, 엘리오를 탐탁지 않게 여기며 자신의 힘으로 우주의 질서를 바로잡으려 한다.
그는 정의롭다는 명분으로 무기를 꺼내고, 자신의 세계관에 반하는 모든 것을 교정하려 한다.

그런데… 이 강압적인 태도, 낯설지 않다.
우리 주변의 어느 부모, 특히 ‘너를 위한 거야’라며 아이를 학원으로 몰아넣는 한국 엄마들의 모습과 닮아 있다.


💣 사랑이라는 이름의 통제

그라이곤 군주는 겉으로는 정의를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세상이 움직이길 바란다.
그는 엘리오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의 기준은 오직 하나, “나의 방식이 옳다.”

놀랍게도 이 모습은,
아이가 힘들다고 해도 “지금 고생해야 나중에 편하다”며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한국 엄마의 모습과 겹친다.


💡 아이를 위해서라면?

현대 한국의 부모들은 아이를 위해 엄청난 비용을 쏟아붓는다.
유아기부터 영어유치원, 초등 땐 학원 뺑뺑이,
중고등 들어가면 심화학습 + 선행 + 수시 관리…

‘아이를 위한 길’이라는 명분은 분명하다.
그런데 그 안에 아이의 진짜 목소리는 담겨 있는가?

엘리오가 우주의 대표가 된 후에도
그라이곤은 인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엘리오가 자신이 상상한 기준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건 아이가 상을 받아도 “이번엔 운이 좋았지”라고 말하는
어떤 부모의 습관과 닮아 있다.
성장의 기준을 자녀가 아니라 부모가 정하는 세계.


🧠 부모의 불안이 만든 '사랑의 갑옷'

그라이곤 군주가 항상 입고 있는 중무장 갑옷.
그건 어쩌면 자신의 불안을 감추기 위한 보호막일지도 모른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도 그렇다.
‘뒤처질까 봐’, ‘내가 실패한 삶을 반복할까 봐’
불안을 감추기 위해 강해져야 했고,
그 강함이 아이에게는 무기처럼 다가올 때가 있다.


💬 그라이곤이 깨달은 순간처럼…

영화 후반부, 그라이곤은 아들 글로드를 위해
자신의 갑옷을 벗는다.
자신이 옳다고 믿던 방식이
사랑을 상처로 만든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아이를 사랑하고 있다.
하지만 때로는 그 사랑이
아이에게 ‘감옥’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는 걸
그라이곤을 통해 다시 배운다.


🌱 엘리오가 말한다

“나는 대표로 선택된 게 아니야. 그냥… 나로서 여기에 있을 뿐이야.”

아이도 마찬가지다.
우주의 대표가 아니어도, 수학 1등이 아니어도, 영어 원어민 수준이 아니어도,
존재만으로 충분히 가치 있다.


📌 정리하며

그라이곤 군주는 단순한 악당이 아니다.
그는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서툴렀던, 너무 전형적인 부모의 모습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를 통해,
지금 우리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아이에게 입히고 있는 갑옷이 무엇인지
한 번쯤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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